골목 어귀에서 울고 있는 한 소녀,
그녀가 눈 감으면 나타나는 삭막한 들판 속에
고대 쿠르간의 조각들이 푸르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녀의 기억에는 파란 하늘이 없지만
어두운 밤 그녀를 비춰주는 달빛은 있습니다.
그녀의 기억에는 따스한 햇살은 없지만
고요한 새벽 그녀와 함께하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발밑에서 바람이 스치면,
긴 시간을 품고 있던 쿠르간의 조각들이 조용히 속삭입니다.
사라졌으나 아직 살아 숨 쉬는,
과거의 메아리가 그녀의 귀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소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갑니다.
들판 너머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녀의 발길은 더 이상 바람을 향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달빛도 희미해졌고,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 그녀를 집어삼킵니다.
새벽이 와주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의 세계엔 더 이상 새벽이 오지 않습니다.
쿠르간의 조각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침묵 속에 잠식되어,
소녀 역시 그 속에서 천천히 사라져 가듯,
어느 순간 그녀도, 그 기억도, 아무 흔적 없이 희미해져 갑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들판.
고요 속에서 소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녀를 기억하는 이도 없어진 듯, 모든 것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져만 갑니다.
달빛은 더 이상 그 자리를 비추지 않고,
바람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한 그곳에 남은 것은
삭막한 돌조각들과, 이미 바래버린 기억의 조각들 뿐입니다.
어느덧 소녀의 존재는 들판과 하나가 되어,
그녀를 감싸던 어둠은 이제 완전한 침묵으로 바뀌고,
쿠르간의 메아리마저 먼지처럼 흩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들판 위에 남아있던 그 미세한 먼지마저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갑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그곳을 찾지 않으며,
그녀의 발자국도, 기억도,
바람에 흩날려 먼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 휴가 복귀하는 날 군인의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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